부산진 척화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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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본문
부산진 척화비는 부산광역시 남구 부산박물관에 있는 조선시대의 척화비입니다.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되었습니다.
건립 배경 및 목적:
- 척화비는 조선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(1866)와 신미양요(1871)를 겪은 뒤 서양과 일본 등 제국주의의 침략을 배격하고 쇄국을 강화할 굳은 결의를 나타내기 위해 세웠습니다.
- 백성들에게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1871년(고종 8) 4월 서울과 전국의 주요한 곳에 세운 비석 중 하나입니다.
위치 및 이전 역사:
- 원래 부산진 척화비는 부산진성(현재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)에 세워져 있었습니다.
- 1924년 용두산 공원으로 옮겨졌다가 1978년에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야외 전시장으로 이전하여 현재까지 전시·보존되고 있습니다.
형태 및 특징:
- 높이 143㎝, 너비 44.7㎝, 두께 23.8㎝의 화강암 재질입니다.
- 기단, 비신(몸돌), 옥개석(지붕돌)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.
- 비석에는 "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아니하고 화친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니 우리 자손만대에 경계한다. 병인년에 만들어 신미년에 세우다(洋夷侵犯非戰則和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辛未立)"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습니다.
역사적 의의:
- 부산진 척화비는 개항 당시의 역사와 쇄국 정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입니다.
- 임오군란(1882) 이후 대원군이 청나라에 납치되자 일본 공사의 요구로 대부분의 척화비가 철거되었으나, 부산진 척화비는 몇 기 남지 않은 척화비 중 하나입니다.
참고:
- 부산에는 부산진 척화비 외에도 가덕도 척화비, 기장 척화비 등 총 3개의 척화비가 현존합니다.
부산진 척화비 - [유적/문화재]에 관한 문서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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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도 정보 | |
기본 정보 | |
이름 | 척화비 (斥和碑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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국가 | 대한민국, 부산광역시 |
유형 | 기념물 |
지정 번호 | 18 |
지정일 | 1972년 6월 26일 |
주소 |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 (대연동, 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) |
시대 | 조선시대 |
수량 | 1기 |
꼬리표 | 부산박물관 |
문화재청 ID | 23,00180000,21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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